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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닷컴] (단편) 그가 결혼한 남자 (서가인) ​

조글로 zoglo.net 潮歌网 2020-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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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그가 결혼한 남자


서가인 



남자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 일을 성사시키려 하였다. 아내가 머나먼 한국에서 전화가 왔다. 아내의 말은 정사장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였다.

“참 너는 머리가 어떻게 잘못된 게 아니니? 어떻게 생긴 것으로 사람을 평가하니, 너는 얼마나 잘 났니?” “그런 게 아니고요. 사람이 잘생기고 못생긴 것을 떠나서 그 사람한테서 서늘한 기운이 돈다 할까 하여튼 그런 게 있어요.”

“내가 보기엔 네가 더 이상해 보여”


영애는 남자한테 핀잔을 들은 후 한참 서있다가 갑자기 머리를 숙이며 “미안-미안해”하며 배를 쓰다 듬었다. 곧 태어날 애를 깜빡하고 남편이란 사람과 너무 오래 전화를 했다."거기서 안 나오고 뭐 하오” 밖에서 누군가 소리를 지른다. 그제야 영애는 공중전화박스 안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부랴부랴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일자로 세워진 공중전화 앞에 많은 사람들이 여러 줄로 서 있었다. 지금은 사람마다 손에 핸드폰을 들고 다니지만 90년대에는 개인이 외국으로 전화하려면 꼭 중구에 있는 중앙 우체국에 가야 했다. 우체국 안은 사람들로 붐비었다.

여름이어서 품이 넓은 원피스를 입었지만 불룩 나온 배를 여전히 감출 수가 없었다.사람들과 부딪칠까 조심스러워 될수록 벽 쪽으로 붙어서 걸어 다녔다.

남편의 의도대로 정사장의 회사와 중한 합작 회사를 건립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심양 도선(桃仙) 공항에 내려 밖으로 나가니 훤칠하게 잘 생긴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유달리 흰 피부에 출구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남편을 보고 영애는 속으로 생긴 것은 영화배우 해도 되겠다 하고 생각하며 한 손을 들어 흔들어 보였다.심양 서탑에 시부모가 계셨지만 택시를 불러 직접 사는 도시로 내려갔다. 서탑에만 가면 남편은 매일 술상을 벌려놓고 세월아 네월아 한다. 사리에 밝고 똑똑한 영애는 남편의 친구들이 시집에 온 걸 만나 보았는데 삼관(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서른이 넘어 만나서 결혼한 지 2년도 되지 않았는데 앞으로 살아갈 길이 무척 힘들겠다고 생각됐다. 그러나 이미 선택했으니 결혼 생활에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참고 살아 나가겠다고 속으로 다짐하며 매일 쓰는 일기에 적어 넣었다.


가을에 아들애를 낳고 한 달 후에는 정부의 규정대로 51 대 49로 중한 합작 회사를 세웠다. 영애의 짐작이 맞았다. 정사장은 낡은 편직기 한대에 너무 오래 끌고 다녀서 도태하려던 자동차 한 대를 자산으로 49%에 포함시켰다. 남편은 검은 번호판을 단 낡은 차에 기사까지 채용해서 신이 나서 돌아다녔다. 대사관-  합자기업만이 검은 번호판을 달아서 그 시절에는 우쭐할 만도 했다. 영애는 합자기업을 남편에게 맡기고 다른일을 했다. 한국 백화점에서 팔다 남아 창고에 쌓여 있는 여성 옷들을 중국으로 들여와 백화점에 내놓았다. 몇 년이 지난 옷 들이었지만 동북의 상해라고 불리는 300만 인구의 이 도시에서는 완전 대환영을 받았다. 개혁 개방 초기여서 사람들은 모든 것을 신기해하며 받아들였다. 백화점에서 정기적으로 유행 의상 발표회도 하였다.모델도 열명 정도 뽑았다.동북의 한족 처자들은 생긴 것도 예쁘고 몸매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조선족도 이쁜 처자가 있을 텐데 하며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제목을 달아서 모델을 뽑는데 조선족을 우선으로 한다고 하였으나 한 명도 오지 않았다. 한족들은 옷만 벗지 않으면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꺼려 하지 않는다.


영애는 일도 바쁘고 하는 일도 재미가 있어서 남편을 소홀히 대했다. 남편은 손바닥만 한 공장에 공장장을 두고 있었다.심양에 있는 친구들이 가끔 내려와서 집에다 술상을 벌려 놓군 했다. 친구가 온다고 영애에게 알릴 때면 영애는 엄마와 아들 그리고 가정부를 공원 옆의 호텔에 하루 있게 하였다. 남편 친구들이 떠난 다음 창문이란 창문을 모두 열어 놓고 집안에 떠도는 술 냄새가 빠져나가게 통풍시켰다. 일 년에 이런 일이 수없이 있다보니 영애는 이 남자와 그냥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이 늘었다. 결혼 초기에 결혼은 한 번이면 족하고 죽을 때까지 간다는 결심도 희미해 갔다. 술은 무슨 술이나 적당히 마시면 기분도 좋고 만나는 사람끼리 대화도 잘 돼서 좋다. 그런데 남편은 술상만 차리면 다섯 시간 이상을 앉아 있다. 육담이 끝이 없는데 어쩌다가 들어보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남편 친구 중 한 명이 “마누라는 첩보다 못하고 첩은 기생보다 못하고 기생은 훔치는 것보다 못하다”라고 하는 것이다. 말이 끝나자 다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하하하 소리 내여 크게 웃는 것이다. 영애는 구엮질이 났다. 화장실에서 한참이나 수도꼭지를 틀어 놓고 얼굴을 세면대에 대고 있었다.


얼마 시일이 흐른 후, 영애는 남편에게 친구들을 집에 들이지 말라고 하였다. 친구들과 술을 먹으려면 밖에 나가 먹으라고 하였다. 왜 그런지 남편은 영애의 말을 잘 들었다.

일이 점점 늘어나자 영애는 아들애는 엄마에게 맡기고 가정부 둘을 들였다. 지식이 있는 젊은애는 아들애를 외할머니와 같이 돌보게 하였다. 나이 든 아줌마는 식사를 책임지고 청소를 하게 하였다. 아들애는 한 살도 되기 전에 한어를 많이 알았다. 젊은 가정부는 아들애를 잘 가리켰을 뿐만 아니라 잘 돌보았다. 출장을 가서 며칠 혹은 일주일이 넘어 돌아와서 보면 아들애는 젊은 가정부와 외할머니를 더 좋아했다. 영애는 서먹서먹해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갑자기 서글퍼졌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이면 아들의 초롱초롱한 눈을 보며 볼에 입을 맞추고는 여전히 밖으로 나갔다. 활기찬 하루가 시작이다.


세월은 흘러 가정부도 몇 번 바뀌였다. 사업한다고 아들애를 별로 가르치지 못했는데 다행히 아들애는 반듯이 커서 중국에서 유명 대학을 나왔다.유학을 영국으로 가서 런던대학에서 박사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남편은 13년 동안 정사장이 만들라는 제품을 꼬박꼬박 만들어 제때에 납품했는데 이윤이 없었다. 회계부장이 몇 번이고 괜히 한다고 하면서 차라리 공장문을 닫고 다른 일을 해보는 게 어떤가고 물었다. 영애는 남편이 그 일마저 없으면 자기절로 무엇을 시작하지 못하는 것을 알기에 밑지지만 않으면 그런대로 놔두라고 하였다. 그런데 하루는 한국 사장 정경작이 무엇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회사를 접자고 통보가 왔다. 후에 알고 보니 영구 개발구에 공장을 새로 차렸다. 영애는 생각할수록 괘씸했다. 달려가서 따지려고 하니 이번에는 남편이 말렸다. 성격이 느슨한 남편은 영애에게 이미 이렇게 됐는데 이제 리론 해 보아야 도리여 마음만 상할 거라고 하였다.생각해 보니 틀린 말은 아니다.이쪽에서 접자고 해도 모르겠는데...,그런 인간은 하늘이 내려다보니 꼭 어느 땐가 큰 코를 다칠 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달랬다.영애는 눈 감고 아웅 하는 자신의 생각이 너무 유치하다고 생각하니 비참해지기까지 하였다.마침 상해쪽에 좋은 파트너가 나타나서 합자 회사로 웃음거리가 된 도시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결국 남편은 하는 일이 없어서 집에서 빈둥빈둥 놀게 되였다. 영애는 나이도 있고 해서 벌써부터 하는 일을 접으려고 생각은 했지만 생각뿐이었다. 하고 있는 일을 갑자기 접을 수도 없고 일이 없는 남편과 놀아 줄 수도 없고 해서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남편과 될수록 많은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다.그러니 친정어머니가 좋아하지 않았다.“옛말에 외손자를 보려니 차라리 밖에 나가 파밭을 매라는 말이 그른데 없더라”하며 친정어머니는 남편과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영애 면전에 뜬금없이 쏘아붙였다. 외국에 있는 아들은 외할머니에게 전화 오는 회수가 점점 뜸해졌다.


“밖에 나가 친구들 만나지 그래요” 저녁 잠자리에 들 때 영애는 한 마디 했다. 같이 사는 친정어머니는 집에만 처박혀 있는 사위가 못마땅한지 영애가 집에만 오면 밥상에서까지 사위가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 있었다느니 하며 잔소리를 한다. 성격 좋은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밥을 먹지만 분위기는 늘 싸늘했다. 어느 휴식 날에는 영애가 집에 있어서 방패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친정어머니는 사위에게 트집을 걸었다. 결국 큰 싸움이 났는데 영애가 말리면 말릴수록 양쪽 누구도 물러 서지 않았다. 영애는 말리다 못해 집 밖으로 나왔다. 정작 나와보니 갈 곳도 없었다. 누구를 만나 하소연하고 싶었지만 친구에게는 가기 싫었다. 무턱대고 걷다 보니 남포 대교에 올라와 있었다. 동방명주과 상해 빌딩이 저 멀리 바라 보였다. 다리난간을 잡고 아래를 보니 유유히 흐르는 황포강이 아찔하게 내려다보였는데 바야흐로 다리 밑을 지나가는 흰 유람선도 보였다.


영애는 무작정 남포 대교에서 내려와 택시를 잡아타고 16푸선착장(十六铺码头)으로 갔다. 유람선의 출발시간이 한 시간 후이여서 영애는 강기슭에 놓인 벤치에 앉아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밖의 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집안일도 그의 속을 뒤집어 놓는다.저녁노을에 물든 강물은 영애의 고뇌를 받아안고 소리 없이 동으로 흘러간다. 잔주름이 밀려오는 강물은 노을에 반짝인다.

유람선을 혼자 타니 좀 멋쩍었지만 그런대로 양쪽을 오가며 배 난간에 기대서서 완전히 다른 풍격의 건축물을 보는 것도 재미가 있었다. 황포강 서쪽의 건물은 30년대에 지은 건물인데 외벽이 두꺼운 화강암으로 돼요 있었고 그리 높지 않다. 황포강 동쪽의 건물은 90년대 이후에 지은 건물인데 아찔하게 올려다 보였고 대부분 외벽이 유리벽이다.


집에 돌아가면 누가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여야 하니 차라리 집에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이틀 동안 호텔에서 지냈다. 사흗날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 친정어머니와 남편은 전화 한통 하지 않았다. 좀 섭섭했지만 혹시 둘이서 문제를 해결한 게 아닌가도 생각해 보았다. 차라리 그러면…하면서 그동안 남편이 엄마한테서 구박을 많이 받았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색을 내지 않았던 남편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폭발했을까 하고 생각하니 꼴불견이던 남편이 안쓰러워졌다.


머저리가 아닌 이상 남편은 그동안 해온 일로 집에 돈 한 푼 가져오지 않았다는것을 모를 리 없었다.

“내가 친구가 어디 있게, 병나 뒈진 놈에다 한국에 돈 벌려 간 놈에다 도박 놀아 감옥에 간 놈밖에 더 있어” 그러고 보니 남편은 친구가 없었다. 상해로 이주해 온 이후로 심양의 친구들은 기본상 발이 끊겼다. 삼관이 다를 뿐 남편은 성격이 좋은 데다 마음씨도 착했다. 예술 쪽에 소질이 있는 그는 젊었을 때 그쪽으로 길을 선택하여야 하는데 시아버지의 고집으로 국영기업의 로동자가 됐다. 누구나 가질 수 없는 철 밥통을 가진 셈이다. 그때는 평생 밥 굶을 걱정 없는 철 밥통을 가진 사람들을 모두 부러워했다. 나를 만나지 않았으면 철밥통을 버리고 작은 도시로 오지 않아도 되였고 삼관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살았다면 행복하였을지도 모를 거라고 영애는 가끔 생각했다. 되돌릴 수 없는 게 인생이다.


영애는 평생 비혼으로 살려고 생각하였는데 엄마의 끈질긴 잔소리와 주위 눈치 때문에 하는 수 없이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되였다.남편을 만나본 영애의 친구들은 너희 둘은 각기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 같다고 평가하며 호들갑을 떨었다.그 후 영애는 다시는 남편을 데리고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영애는 하던 사업을 접기로 하였다. 눈독을 들이고 있던 사람들에게 내놓았다.좀 아쉬운 가격에 팔렸다. 남편과 시시각각 부딪치는 친정어머니는 남편을 딸에게 붙어 사는 기생충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집 근처에 작은 아파트 한 채를 사서 친정어머니를 그곳으로 모셔 살게 하고 오래된 가정부는 따라가게 하였다.


평생 하지 않던 집안 살림을 해보기로 했다. 남편은 집에만 있는 영애가 좋은지 아니면 장모가 없는 집이 좋은지 그 큰 허우대로 영애의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하긴 평생 제대로 같이 있어 보지 못했다. 그러나 영애는 그러는 남편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영애가 밥을 할 때면 남편은 거실에서 젊었을 때 놀던 기타를 쳤다. 독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구소련 노래인데 ‘까츄사’ ‘산사나무’ ‘모스크바 교외의 밤’을 연속 불러 댔다. 목소리는 별로였지만 그런대로 들어 줄만 했다.


아들이 전화가 왔다. 결혼할 상대가 있는데 데리고 가도 되냐고 물었다. 위챗 동영상으로 보니 귀엽게 생겼다. 조선족이 아니고 한국 사람이라고 했다. 좀 아쉽다.런던의 다른 대학교 학생인데 음악 동아리에서 만났다고 한다. 속일 수 없는 게 유전자다.아들은 아버지를 꼭 빼닮았는데 음악을 좋아하는 것까지 닮았다. “네가 좋다면 된다. 빨리 데리고 오너라” 남편은 영애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아 큰 소리로 말했다. 영애는 어처구니없는 눈길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눈치코치 없는 게 두 번째 가라 하면 서러워할 사람이다.


몇 달 후 아들은 학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직장은 중국에서 다니지 않고 한국에서 시작하겠다고 하였다. 사귀는 여자 친구 때문이다. 남편은 안된다고 야단을 하였으나 아들은 영애 눈치만 살핀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바늘 가는데 실 따라간다는 속담은 옛말이다. 지금은 남자들이 대개 여자를 따라간다. 영애는 침실에 들어와 창밖을 바라보며 서있다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어 버렸다. 딸은 엄마 닮고 아들은 아버지를 닮는다더니…,30년 전에 남편이 큰 도시에서 작은 도시로 내려왔으니 나도 여전히 현대인에 속하는구나 하면서 돌아섰다.


“한국에 가면 살집도 있어야 하고 직장도 구해야 하는데 계획이 있니?” 영애는 소파에 앉아 침묵을 지키고 있는 아들에게 물었다. 텔레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던 남편이 영애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입을 열었다. “네 학력이면 여기서 얼마든지 높은 봉급을 받는 직업을 찾을 수 있는데 한국에는 왜 가니?” 아들은 한참이나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자 친구와 좀 더 사귀어보려면 한국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결혼이라도 할 생각이니?” “네, 어머니 아버지만 동의하면 이번에 가서 결정 하려구요.” “뭐 하는 집안이니?” “부모님은 몇 년 전에 다 돌아가셨고요. 외동딸이에요." “안됐구나.” 잠시 객실에는 침묵이 흘렀다. 텔레비전 돌아가는 소리만 요란했다. 영애는 남편의 손에 있는 리모컨을 가져다가 텔레비를 껐다.


결국 아들은 며칠 후에 한국으로 떠나갔다. 영애는 무척 섭섭했지만 아들의 의사를 존중하기로 하였다.영애는 혹시 아들이 전화 올까 24시간 켜놓고 잠을 자도 베게 옆에 놓고 잤다.


“전화해보면 될 것 가지고 기다리긴 왜 기다리는데…"남편은 책을 보다가도 초조하게 핸드폰만 바라보는 영애를 보고는 핀잔을 주었다.

“한국 전화번호를 만든 다음에 전화한다고 했어요.”

“말이 전화한다고 했지 허허, 한창 좋을 때니 우릴 잊어버릴 수도 있지”

“알겠어요.”영애는 핸드폰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저녁밥 지을 때가 되였다. 쌀을 씻어 전기 가마솥에 안치고 찬거리를 찾으려고 냉장고 문을 여는데 핸드폰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혹시 전화 소리가 안 들릴까 제일 높은 음까지 올려놓았더니 옆에서 듣기엔 고음이어서 귀청을 자극했다. 남편이 거실에 있다가 텔레비를 끄고 부엌으로 다가왔다. 그도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아들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 이 번호는 제 번호입니다. 저 잘 있고요. 이미 일을 시작했습니다.”

“무슨 일하니? 그리고 무슨 회사니?”


“어머니 하던 일과 비슷해요. 회사를 관리해요. 의료 제품 만드는 회사에요.”영애는 의료 회사란 말에 흠칫하며 물었다.


“회사 이름이 뭐라고 했니?”회사 이름을 듣자마자 영애는 아연 실색했다. 옆에 가까이 서있던 남편도 얼굴이 굳어졌다. 13년간 노예처럼 제품을 만들어 주고는 이윤 한 푼도 남기지 못한 것을 두 사람은 알고 있다. 기껏해야 남편은 일 년에 한 번씩 한국에 사흘 정도 가있으면서 대접받은 게 전부다. 합작 회사를 청산할 때 남편은 정경작이 어떤 인물인지를 그제야 알았다. 한국에 갈 때 쓴 호텔비에 기타 비용까지 모두 청산할 서류로 제출하였다.



아들아 내 생각에는 네가 한번 상해로 오는 게 좋겠구나”영애는 잠시 숨을 고르고 핸드폰에 대고 말했다. 후들후들 다리를 떨며 쓰러지려는 영애를 남편이 얼른 부축해서 거실로 나가 소파에 앉혔다.


“당장 돌아와, 이 자식아”남편은 전화에 대고 거친 말을 쏟아냈다. 영애는 남편한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받아 꺼버렸다. 사람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게 이런 상황을 두고 한 말인가 보다.


며칠 후 아들은 집으로 돌아왔다. 영애는 아들의 말을 들어 보기로 하였다. 아들은 몇 년 전부터 아버지 회사와 한국 회사와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고 했다. 며느리 될 처자도 알고 있었고 한국 회사는 이미 중견회사로 성장했고 서울 테헤란로에 회사 건물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아들은 2년 전에 여자친구의 부모를 만나보았고 정경작 사장이 세상을 떠날 때 회사 지분을 각각 50%를 딸과 자기에게 남겨 주었다고 하였다. 너무 뜻밖의 말에 영애와 남편은 멍하니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들은 정경작이 유언장에 살다가 만약 이혼하면 지분 전부를 회수한다는 조건이 있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2020년 4월 6일 상해에서


조글로 문학닷컴 2020년 04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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